2008년 07월 29일
skeptical 펌] 가부장제도는 여성들이 만든 제도 -tailspin-
아랫글은 군가산점 논란이 한창이던 2000년2월에 하이텔 페미니스트동호회에 올렸던 글입니다. 우연찮게 웹상에 남아 있길래 제글을 제가 퍼옵니다. 지금 읽어보니 시의성에서 조금 진부하고 또한 아무래도 조금 더 젊은(^^)시절에 쓴 글인지라 과격하기는 합니다만 아래 포스팅에서 성매매관련하여 재밌는 대화를 진행하다보니 재미는 있을 듯하여 게시합니다.......ㅋㅋㅋ...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편안하게라도 포스팅욕구를 해소해야겠다는...^^ (참고로 졸라 깁니다...ㅠㅠㅠ)
가부장제도는 여성들이 만든 제도
얼마전, 작년쯤이던가 삼척시의 남근공원이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가 빠져 죽은 처녀귀신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짓고 그 처녀로 죽은원혼을 달랜다며 해마다 목좃을 깍아 제단에 바쳐 올리던 지역풍습을 지역문화재로 삼아 시에서 아예 발벗고 나서 남근공원을 조성하여 거대한 목좃들을 세워전시했던 그 일 말이다.
당연히, 남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물어뜯으려하는 남근숭배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곳은 그냥 지나칠수 없는 곳이리라. 하여, 어느 이인가가 그곳을 다녀온후 기행문이랍시고 하이텔에 올려 놓았는데 그것이 또 더욱 가관인지라 그 기행문 구절 한토막 인용하자라면 "도대체 이런 곳을 누가 찾는지 모르겠다." 라.
자신이 그 곳을 열심히 순례하듯 다녀왔으면서 "도대체 누가 찾는가?" 라는 질문에 빠진 어이없는 자가당착이 참으로 유아적이라 실소를 금할 길 없다만 더 깊이 바라보건데 바로 그러한 자가당착적인 모순된 발상이 실상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 치고는 예외없이 걸려있는 "남근혐오=남근숭배" 증상임을 적시한다라면 그것이 그렇게 가벼이 웃고 넘길일은 아니라 하겠다.
혹자는 혐오와 숭배가 어찌 같은 것이냐라고 항변할 지 모르겠지만 숭배하던 혐오하던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고 그러한 집착은 역시나 자신에게는 없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지니 구태여 프로이든지 프로이튼지하는 정신분석학자의 이론까지 들이밀것은 없다라 하겠다.
여성이 남근에 집착하는 것이야 어쩌면 남성이 자궁에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본능적 지향이자 추구라고 애써 이해하고 웃으며 넘어갈만도 할 일이겠으나 문제는 바로 그러한 집착이 과대포장된 사회현상으로 돌출되어 기껏해야 남근숭배주의자에 불과한 이들이 무슨 여성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의 대가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는 작금의 한국페미니즘의 실상에 접하게 되노라면 이는 실소가 아니라 실성에 가깝다 단언하겠다.
자신이 그 곳을 열심히 순례하듯 다녀왔으면서 "도대체 누가 찾는가?" 라는 질문에 빠진 어이없는 자가당착이 참으로 유아적이라 실소를 금할 길 없다만 더 깊이 바라보건데 바로 그러한 자가당착적인 모순된 발상이 실상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 치고는 예외없이 걸려있는 "남근혐오=남근숭배" 증상임을 적시한다라면 그것이 그렇게 가벼이 웃고 넘길일은 아니라 하겠다.
혹자는 혐오와 숭배가 어찌 같은 것이냐라고 항변할 지 모르겠지만 숭배하던 혐오하던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고 그러한 집착은 역시나 자신에게는 없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지니 구태여 프로이든지 프로이튼지하는 정신분석학자의 이론까지 들이밀것은 없다라 하겠다.
여성이 남근에 집착하는 것이야 어쩌면 남성이 자궁에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본능적 지향이자 추구라고 애써 이해하고 웃으며 넘어갈만도 할 일이겠으나 문제는 바로 그러한 집착이 과대포장된 사회현상으로 돌출되어 기껏해야 남근숭배주의자에 불과한 이들이 무슨 여성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의 대가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는 작금의 한국페미니즘의 실상에 접하게 되노라면 이는 실소가 아니라 실성에 가깝다 단언하겠다.
그들은 항상 "가부장제"라는 화두를 입에 달고 살면서 여성은 남성에 의해 지배받고 억압받는 피해자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니 사실 허다한 페미니즘 이론 중에 위와 같이 모든 남성에 대한 모든 여성의 해방을 주장함에 근거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한국페미니즘의 주류가 바로 저러한 편향되고 기형적인 페미니즘이 기타의 것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니 이러한 기현상은 참으로 우려할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싶다.
무산자의 유산자에 대한 혁명은 들어봤어도 무근자의 유근자에 대한 혁명이란게 당최 가능한 일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단지, 좃이 있다하여 지배자이고 없다하여 피지배자라는 그들이 제시하는 등식을 숱하게 접하게 되다보니 이제 그것이 어느새 한국페미니즘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 자리잡아 나가는 듯하다 판단되며 참으로 저러한 인식에 큰 공을 세운 신정모라를 필두로한 고은광순이니 김신명숙이니 하다못해 전여옥이까지 이르는 저들 남근숭배=남근혐오주의자들이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여옥의 저서 <일본은 없다>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일본이라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온갖 편견에 둘러싸여 일본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들추어내며 과감하게 "일본은 없다" 라고 선언하던 그 소아병적인 과대망상이 결국은 스스로의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은 일본은 없다에 나타나는 수많은 일본적 사례들이 결국은 우리사회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부정적 모습이란 점이 증거하는 것이고, 이를 기반삼아 더 나아가 저들이 맨날 근거로 내세우는 남성에 대한 혐오 또는 공격의 근거로 삼는 남성성이란 것들이 사실은 여성에게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임을 또다시 여실하게 웅변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사회적 인간본성의 추악하고 부정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남성성" 이라고 몰아부치는 저들은 역시나 "일본은 없다"를 함께 보며 키득거리며 고소해하던 한국인의 한국적 열등의식처럼 남성에 대한 여성적 열등의식에 진배없다라고 나는 판단한다.
플라자의 모인사는 남성이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지배적인 반면 여성은 평화적이고 모성적이란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보았거니와 그러한 일도양단식의 성적인 본성 구별의 실상은 여성을 그렇게 (순종적이고 순응적으로) 길들이기 위한 사회지배체제의 의식적 상징조작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으나 이것이 심지어는 한국에서 여성운동을 한다라는 이들까지도 예외없이 내세우는 여성성의 찬양지점임을안다라면 단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무산자의 유산자에 대한 혁명은 들어봤어도 무근자의 유근자에 대한 혁명이란게 당최 가능한 일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단지, 좃이 있다하여 지배자이고 없다하여 피지배자라는 그들이 제시하는 등식을 숱하게 접하게 되다보니 이제 그것이 어느새 한국페미니즘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 자리잡아 나가는 듯하다 판단되며 참으로 저러한 인식에 큰 공을 세운 신정모라를 필두로한 고은광순이니 김신명숙이니 하다못해 전여옥이까지 이르는 저들 남근숭배=남근혐오주의자들이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여옥의 저서 <일본은 없다>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일본이라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온갖 편견에 둘러싸여 일본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들추어내며 과감하게 "일본은 없다" 라고 선언하던 그 소아병적인 과대망상이 결국은 스스로의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은 일본은 없다에 나타나는 수많은 일본적 사례들이 결국은 우리사회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부정적 모습이란 점이 증거하는 것이고, 이를 기반삼아 더 나아가 저들이 맨날 근거로 내세우는 남성에 대한 혐오 또는 공격의 근거로 삼는 남성성이란 것들이 사실은 여성에게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임을 또다시 여실하게 웅변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사회적 인간본성의 추악하고 부정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남성성" 이라고 몰아부치는 저들은 역시나 "일본은 없다"를 함께 보며 키득거리며 고소해하던 한국인의 한국적 열등의식처럼 남성에 대한 여성적 열등의식에 진배없다라고 나는 판단한다.
플라자의 모인사는 남성이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지배적인 반면 여성은 평화적이고 모성적이란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보았거니와 그러한 일도양단식의 성적인 본성 구별의 실상은 여성을 그렇게 (순종적이고 순응적으로) 길들이기 위한 사회지배체제의 의식적 상징조작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으나 이것이 심지어는 한국에서 여성운동을 한다라는 이들까지도 예외없이 내세우는 여성성의 찬양지점임을안다라면 단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한국인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상징조작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아는 이라면 여성이 평화지향적이란 개풀 뜯는 소리에 결코 동의할 수 없겠거니와 그러한 집단의식적 상징조작은 때론 아니, 매우 자주 타집단과 구별하여 자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세뇌되고 교육되어져 집단의식을 형성하는데 일조하는 것으로 그 사회적 역할과 사명을 갖는 것이란 점도 간파한다라면 그러한 상징조작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는 두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 하겠다.
인간은 성적으로 그 본성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동시에 한입으로 남성은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란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한다라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며 심지어는 이것이 여성도 똑같은 인간으로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역시 동시에 한입으로 여성은 약자이므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함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 뿌리가 어디인가 하는 짙은 절망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얼마전 EBS난상토론에 출연한 여단측 대표가 "여성은 가사노동으로 이미 충분히 봉사하고 있다" 라는 발언을 토론말미에 한 바가 있다. 가사노동을 봉사라고 지칭하는 그 인식의 저변에는 역시나 남성의 사회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은 스스로 희생하여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라는 "피해의식"이 그 근본이라 할 것이니 도대체 여성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가사노동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남성지배체제하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고통받고 신음하는 여성만이 존재한다라는 것인지, 왜 그렇게만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과연 가부장제도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제도인가? 이것부터 제대로 규명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들의 가부장제도=남성지배라는 등식을 제멋대로 내질르는 행위를 그치게 하지 못할 것 같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가부장제도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남성이 아니라 바로 여성이다. 남성이 그런 체제를 만들어 여성을 복속시킨 것이 아니라 여성이 본능적으로 그러한 체제를 스스로 만들어 나간 것이다.
1. 가부장제도는 여성들이 만들었다.
인간은 성적으로 그 본성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동시에 한입으로 남성은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란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한다라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며 심지어는 이것이 여성도 똑같은 인간으로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역시 동시에 한입으로 여성은 약자이므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함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 뿌리가 어디인가 하는 짙은 절망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얼마전 EBS난상토론에 출연한 여단측 대표가 "여성은 가사노동으로 이미 충분히 봉사하고 있다" 라는 발언을 토론말미에 한 바가 있다. 가사노동을 봉사라고 지칭하는 그 인식의 저변에는 역시나 남성의 사회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은 스스로 희생하여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라는 "피해의식"이 그 근본이라 할 것이니 도대체 여성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가사노동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남성지배체제하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고통받고 신음하는 여성만이 존재한다라는 것인지, 왜 그렇게만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과연 가부장제도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제도인가? 이것부터 제대로 규명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들의 가부장제도=남성지배라는 등식을 제멋대로 내질르는 행위를 그치게 하지 못할 것 같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가부장제도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남성이 아니라 바로 여성이다. 남성이 그런 체제를 만들어 여성을 복속시킨 것이 아니라 여성이 본능적으로 그러한 체제를 스스로 만들어 나간 것이다.
1. 가부장제도는 여성들이 만들었다.
흔히들 일부다처의 사회를 여성에게 심각하게 불평등한 사회로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남성이 여러명의 뭇 여성을 거느린다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동물적(?)이란 뜻이고 그러한 체제가 얼핏보면 대단히 남성에게는 유리하고 여성에게는 불리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그 해당하는 한 남성과 뭇여성에게만 관련된 일이지 사회전체적으로 보았을때에는 여성보다는 남성끼리의 차별이 훨씬 더 심각한 현상이다. 능력이 있는 놈은 여럿의 여자를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놈은 심지어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 남성간의 불평등이 과연 여성에게 비할 만한 것이겠는가?
이에 대항하여 남성들간의 평등을 주창하며 바뀐 제도가 바로 일부일처제도라 단정할 수 있겠다. 즉, 일부일처이든 일부다처이든간에 여성은 어차피 한 남성을 차지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할 것이니 그것을 공유하느냐 독점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 반면, 남성에게는 더 이상 불공평하게 뛰어난 한 놈이 여럿을 차지하는 불평등을 개선한 결과라 할 것이니 결국 일부일처제는 남녀평등이 아니라 남성들간의 평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솔직하고 냉정한 평가이리라.
여성에게 유리한 제도는 아마도 태초의 일부다처제 내지는 군거잡혼일게다. 일부다처제는 뛰어난 종자를 가진 남성을 어느 한 여성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공유할 수 있다라는 장점이 있고, 군거잡혼은 종자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하에 모든 자식들에 대한 강한 독점권을 여성이 가질 수 있다라는 장점이 또한 있다라고 할 것이다. 군거잡혼제하에서는 현행과 같은 호주제도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여성은 일부다처제를 원한다. 여기에 바로 호주제도의 근본적 뿌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 선사시대에 과연 일부다처였는가 군거잡혼이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이나 나는 대다수 포유류, 특히나 육식동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부다처제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라고 판단한다.
이에 대항하여 남성들간의 평등을 주창하며 바뀐 제도가 바로 일부일처제도라 단정할 수 있겠다. 즉, 일부일처이든 일부다처이든간에 여성은 어차피 한 남성을 차지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할 것이니 그것을 공유하느냐 독점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 반면, 남성에게는 더 이상 불공평하게 뛰어난 한 놈이 여럿을 차지하는 불평등을 개선한 결과라 할 것이니 결국 일부일처제는 남녀평등이 아니라 남성들간의 평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솔직하고 냉정한 평가이리라.
여성에게 유리한 제도는 아마도 태초의 일부다처제 내지는 군거잡혼일게다. 일부다처제는 뛰어난 종자를 가진 남성을 어느 한 여성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공유할 수 있다라는 장점이 있고, 군거잡혼은 종자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하에 모든 자식들에 대한 강한 독점권을 여성이 가질 수 있다라는 장점이 또한 있다라고 할 것이다. 군거잡혼제하에서는 현행과 같은 호주제도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여성은 일부다처제를 원한다. 여기에 바로 호주제도의 근본적 뿌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 선사시대에 과연 일부다처였는가 군거잡혼이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이나 나는 대다수 포유류, 특히나 육식동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부다처제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라고 판단한다.

포유류, 특히 영장류는 임신기간이 길고 일회생산 개체수가 적으며 또한 그 개체의 성장속도가 느리다라는 단점 때문에 다른 개체들에 비해 숫적으로 열세일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가장 자연계의 강력한 지배자인 육식동물들이 이런 생태적 한계로 인해 그 개체수를 소수로 유지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온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그 자연계의 놀라운 섭리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러한 개체의 종족보존 본능이 자연히 암컷들로 하여금 강한수컷의 종자를 원하게 만들어 비실한 숫컷들은 자연 도태되고 강한숫컷만 생존할 수 있게 만든 그러한 체제가 바로 일부다처제도의 원시적 모습이었으리라.
태초의 일부다처제도는 강한숫컷이 암컷들을 무력 또는 폭력으로 굴복시키고 복속시킨 결과가 아니라 암컷들이 너도나도 강한숫컷의 씨를 원하여 그 놈 주위에 몰려 들었기에 나타난 결과이고 이는 바로 가부장사회의 단초는 바로 여성들이 만들었다라는 여실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가부장제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종속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라고? 웃기지 마라.
여성이 강한 숫컷 내지는 우월한 숫컷을 원하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며 그러한 본능의 근원은 바로 그렇게도 위대하다라고 칭송되는 모성본능이다. 강한 새끼를 낳고자 하는 본능. 원시의 여성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여성 역시 이러한 본능은 하나도 변한것 없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 것은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강한 숫컷을 암컷들끼리 공유할 수 없다라는 절박한 경쟁상태에 놓여 서로가 독점, 선점하기 위한 무한경쟁에 다다르게 되니 이것이 화장술이 발달하고 패션산업이 발달하게 되는 커다란 산업기반이 되는 것이라.
과거에는 비록 강한숫컷을 다른 암컷이 먼저 차지하고 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것으로 빼았아 오는게 가능했지만 - 물론 현대에도 가능하기는 하다. 조금 그 절차가 어려워 졌을뿐 - 현대에는 어렵기 때문에 독점보다는 선점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만큼 여성은 나름대로 자연계의 일부라고도 할 사회에서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을 본능적으로 다하고 있는 것인라 말할 수 있겠다.
태초의 일부다처제도는 강한숫컷이 암컷들을 무력 또는 폭력으로 굴복시키고 복속시킨 결과가 아니라 암컷들이 너도나도 강한숫컷의 씨를 원하여 그 놈 주위에 몰려 들었기에 나타난 결과이고 이는 바로 가부장사회의 단초는 바로 여성들이 만들었다라는 여실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가부장제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종속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라고? 웃기지 마라.
여성이 강한 숫컷 내지는 우월한 숫컷을 원하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며 그러한 본능의 근원은 바로 그렇게도 위대하다라고 칭송되는 모성본능이다. 강한 새끼를 낳고자 하는 본능. 원시의 여성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여성 역시 이러한 본능은 하나도 변한것 없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 것은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강한 숫컷을 암컷들끼리 공유할 수 없다라는 절박한 경쟁상태에 놓여 서로가 독점, 선점하기 위한 무한경쟁에 다다르게 되니 이것이 화장술이 발달하고 패션산업이 발달하게 되는 커다란 산업기반이 되는 것이라.
과거에는 비록 강한숫컷을 다른 암컷이 먼저 차지하고 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것으로 빼았아 오는게 가능했지만 - 물론 현대에도 가능하기는 하다. 조금 그 절차가 어려워 졌을뿐 - 현대에는 어렵기 때문에 독점보다는 선점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만큼 여성은 나름대로 자연계의 일부라고도 할 사회에서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을 본능적으로 다하고 있는 것인라 말할 수 있겠다.
가부장제도는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집단의 대표권이요 다른 하나는 혈연에 의거한 세습이다. 집단의 대표권, 즉 권력을 강한숫컷이 차지하고 또한 그러한 권력은 혈연에 의거한 강한숫컷의 아들에게 세습된다. 가부장제도가 만약에 단지 강한숫컷의 대표권만으로 끝난다라면 그것은 자연생태계적인 일부다처제의 일환으로 그치고 말 것이지만 바로 여기서 혈통에 의한 권력의 세습이라는 차원까지 이어질때 진정한 사회제도로서의 가부장제도가 완성되는 것이라 이야기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라면, 가부장제도의 강한숫컷에게 대표권을 몰아준 것이 암컷이라면, 과연 숫컷이 세습하도록 만든 것은 숫컷이 저지른 일일까? 천만에 이것도 역시 암컷들이 저지른 일이다.
일부다처제하에서 자식들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물론 당연하게도 단 하나 존재하는 아버지의 밑에 귀속되지만 그들이 더욱 강력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부계가 아니라 모계이다. 즉, 배다른 다른 자식들에 대하여 그 부계혈통이 같다라는 이유로 같은 자식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부계와 모계가 일치하는 더 나아가 엄밀히 말하자라면 - 부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니 - 모계를 더욱 끈끈한 연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바로 그러한 단일모계집단의 자식들이 후계권을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다른 모계집단과의 권력암투의 과정에서 장자세습이니 적자세습이니 하는 제도가 파생되 나오는 것이라 이해하는 것이 순리적이다. 장자세습이란 "선점" 한 모계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며, 적자세습이란 "승리" 한 모계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부계의 입장에서 어느 모계를 타고 나온 자식인들 똑같이 소중한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것이다. 그러한 자식들을 부계의 입장에서 누구는 장자요 누구는 차자요 또는 누구는 적자요 누구는 서자요하며 구태여 차별하여 가릴 필요는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니 그러한 구분은 부계권력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부계권력 밑에서 안위하는 수많은 모계권력들의 권력암투의 과정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차차로 제도로서 굳어진 것이 바로 정실부인이 모계권력의 대표권을 쥐게 되는 적자세습제도로 결과지어졌다라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라면, 가부장제도의 강한숫컷에게 대표권을 몰아준 것이 암컷이라면, 과연 숫컷이 세습하도록 만든 것은 숫컷이 저지른 일일까? 천만에 이것도 역시 암컷들이 저지른 일이다.
일부다처제하에서 자식들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물론 당연하게도 단 하나 존재하는 아버지의 밑에 귀속되지만 그들이 더욱 강력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부계가 아니라 모계이다. 즉, 배다른 다른 자식들에 대하여 그 부계혈통이 같다라는 이유로 같은 자식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부계와 모계가 일치하는 더 나아가 엄밀히 말하자라면 - 부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니 - 모계를 더욱 끈끈한 연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바로 그러한 단일모계집단의 자식들이 후계권을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다른 모계집단과의 권력암투의 과정에서 장자세습이니 적자세습이니 하는 제도가 파생되 나오는 것이라 이해하는 것이 순리적이다. 장자세습이란 "선점" 한 모계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며, 적자세습이란 "승리" 한 모계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부계의 입장에서 어느 모계를 타고 나온 자식인들 똑같이 소중한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것이다. 그러한 자식들을 부계의 입장에서 누구는 장자요 누구는 차자요 또는 누구는 적자요 누구는 서자요하며 구태여 차별하여 가릴 필요는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니 그러한 구분은 부계권력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부계권력 밑에서 안위하는 수많은 모계권력들의 권력암투의 과정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차차로 제도로서 굳어진 것이 바로 정실부인이 모계권력의 대표권을 쥐게 되는 적자세습제도로 결과지어졌다라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원시의 일부다처제하에서는 그 수많은 동일부계혈통의 자식들도 자연계의 무한경쟁에 놓여 개중의 강한놈만이 살아남아 부계의 권력을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심지어 부계가 늙어 병들고 지치면 자식된 강한숫놈이 그 부계를 몰아내기도 죽여버리기도 한다 - 형태를 띠었을 것이나, 그러한 원시공동체가 생산공동체로 전환하면서 권력이 생성되고 그 권력은 더 이상 개체의 강한 속성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일부계의 자식들이 개체의 속성만으로 자연생태계적인 무한경쟁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투쟁의 형태로 변화, 진화하였을 것이며, 그러한 권력세습투쟁의 기반은 바로 모계권력의 위계확립이 필히 그에 선행되었으리라 보는 것이 역시 타당할 것이다.
권력은 질서로 유지된다. 권력이 원시적인 힘과 다른 것은 바로 그것이 질서 또는 법이라는 공동체적 합의에 근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 합의가 강압된 것이든 자발적이든 간에 그러한 합의를 이룬 것은 바로 원시적인 사회형성의 단초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합의적 질서에 기초한 정실부인제도는 가부장권력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모계권력간의 오랜 권력투쟁의 결과로 그 질서유지를 위해 합의된 것이라 할 것이고 그러한 정실부인은 가부장권력의 제2인자로, 또한 가장 강력한 자신의 혈통으로서 권력을 세습받을 수 있도록하는 어쩌면 삼종 지도가 아닌 삼종지권의 위세를 자랑하였으리라. 남편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나가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
도대체 누가 권력이 부계를 통해 전승된다라고 주절대는 것인가? 성은 비록 부계의 성을 물려받되 이미 일부다처제하에서의 동일성씨는 타집단에 대항하여서만 그 구분의 실효성이 있는 것이지 자집단의 권력세습과정에서의 동일성씨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동일성씨 동일부계가 아니라 동일모계이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도의 두축을 태초부터 만들어 놓고 그것을 제도화시켜 강요한 이들이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이 가부장제도라는 것에 대해 여성들로부터 비난받아야 할 일이 추호도 없는 실상이라 하겠다.
권력은 질서로 유지된다. 권력이 원시적인 힘과 다른 것은 바로 그것이 질서 또는 법이라는 공동체적 합의에 근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 합의가 강압된 것이든 자발적이든 간에 그러한 합의를 이룬 것은 바로 원시적인 사회형성의 단초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합의적 질서에 기초한 정실부인제도는 가부장권력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모계권력간의 오랜 권력투쟁의 결과로 그 질서유지를 위해 합의된 것이라 할 것이고 그러한 정실부인은 가부장권력의 제2인자로, 또한 가장 강력한 자신의 혈통으로서 권력을 세습받을 수 있도록하는 어쩌면 삼종 지도가 아닌 삼종지권의 위세를 자랑하였으리라. 남편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나가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
도대체 누가 권력이 부계를 통해 전승된다라고 주절대는 것인가? 성은 비록 부계의 성을 물려받되 이미 일부다처제하에서의 동일성씨는 타집단에 대항하여서만 그 구분의 실효성이 있는 것이지 자집단의 권력세습과정에서의 동일성씨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동일성씨 동일부계가 아니라 동일모계이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도의 두축을 태초부터 만들어 놓고 그것을 제도화시켜 강요한 이들이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이 가부장제도라는 것에 대해 여성들로부터 비난받아야 할 일이 추호도 없는 실상이라 하겠다.
만약, 가부장권력이 태초에 남성이 여성을 무력 또는 폭력으로 점유하고 그 지배를 이룬 것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며 또한 그러한 혈통에 의거한 권력세습이 겨우 지 죽으면 모든게 끝나버릴 강한숫컷이 단지 제삿밥 얻어먹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라 생각하는 이라면 마찬가지로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제도를 남성들이 만들었다라고 생각하는지 역시 그 근거를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원시사회공동체가 일부다처제가 아닌 군거잡혼 또는 일부일처제였다라면 위의 나의 추론은 분명 처음부터 끝가지 오류튜성이일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부장제도 태동을 순리대로 해석하자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일부다처 제도를 그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상당히 무리를 하여야 할 것이라 판단한다.
만약, 군거잡혼을 그 전제로 한다라면 - 실제로 여성학을 하는 이들은 군거잡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군거잡혼은 바로 모계사회의 모델이기 때문 - 어느 시기엔가 일부다처제로 전환하게 되는 결정적 동기, 즉 쿠데타에 버금가는 남성권력의 독자적인 형성과 그 폭력적 찬탈과정을 필히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군거잡혼은 이미 위에서 말한 포유동물 즉, 임신기간이 길고 생산개체수가 적으며 개체성장속도가 늦는 일반적 포유류의 속성에 비추어 아니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그러한 일반포유동물의 속성 보다 더 심각하게 약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물론 포유동물들 중에도 상대적으로 임신기간이 짧고 생산개체수가 많으며 성장속도가 빠른 놈들은 군거잡혼의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2.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권력자이고 여성은 피지배자인가?
절대로 아니다. 대표적 권력은 암컷들로부터 선택받은 강한숫컷이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놈에게 권력을 맡긴 주체는 바로 다수의 암컷들이며 그에 항거하는 수컷들은 강한숫컷 또는 그를 둘러싼 암컷들로부터 무리에서 내침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다른 숫컷들은 자연적 원시상태에서는 그대로 도태되어 개체의 생명을 보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대다수의 수컷들에게는 비참한 현실이자 제도가 가부장제도이다.
또한 원시사회공동체가 일부다처제가 아닌 군거잡혼 또는 일부일처제였다라면 위의 나의 추론은 분명 처음부터 끝가지 오류튜성이일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부장제도 태동을 순리대로 해석하자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일부다처 제도를 그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상당히 무리를 하여야 할 것이라 판단한다.
만약, 군거잡혼을 그 전제로 한다라면 - 실제로 여성학을 하는 이들은 군거잡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군거잡혼은 바로 모계사회의 모델이기 때문 - 어느 시기엔가 일부다처제로 전환하게 되는 결정적 동기, 즉 쿠데타에 버금가는 남성권력의 독자적인 형성과 그 폭력적 찬탈과정을 필히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군거잡혼은 이미 위에서 말한 포유동물 즉, 임신기간이 길고 생산개체수가 적으며 개체성장속도가 늦는 일반적 포유류의 속성에 비추어 아니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그러한 일반포유동물의 속성 보다 더 심각하게 약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물론 포유동물들 중에도 상대적으로 임신기간이 짧고 생산개체수가 많으며 성장속도가 빠른 놈들은 군거잡혼의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2.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권력자이고 여성은 피지배자인가?
절대로 아니다. 대표적 권력은 암컷들로부터 선택받은 강한숫컷이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놈에게 권력을 맡긴 주체는 바로 다수의 암컷들이며 그에 항거하는 수컷들은 강한숫컷 또는 그를 둘러싼 암컷들로부터 무리에서 내침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다른 숫컷들은 자연적 원시상태에서는 그대로 도태되어 개체의 생명을 보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대다수의 수컷들에게는 비참한 현실이자 제도가 가부장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생태계에서는 쓸모없던 숫컷들도 그 쓸모가 생기게 되었으니 바로 생산공동체로 진화하면서 생산을 담당할 노동력과 공동체를 자위할 무력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강한숫컷 이외의 숫컷들은 바로 강한숫컷으로 대표되는 가부장 권력의 노예이자 군대로 대단히 유용한 쓸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숫컷들의 이용가치는 결국 숫컷들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약간의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러한 나누어진 작은 권력들은 다시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며 소위 말하는 중간계급 태동의 기초가 된다.
작은 권력들도 능력에 따라 암컷을 여럿 차지할 수 있게 되고 가장 강한 숫컷에게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의 암컷들은 바로 이러한 작은 권력에 기대고 의존하여 기존의 원초적인 권력집단의 자기복제과정을 그대로 흉내내어 수많은 가문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어쩌면, 성씨의 기초가 여기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숫컷들의 이용가치는 결국 숫컷들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약간의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러한 나누어진 작은 권력들은 다시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며 소위 말하는 중간계급 태동의 기초가 된다.
작은 권력들도 능력에 따라 암컷을 여럿 차지할 수 있게 되고 가장 강한 숫컷에게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의 암컷들은 바로 이러한 작은 권력에 기대고 의존하여 기존의 원초적인 권력집단의 자기복제과정을 그대로 흉내내어 수많은 가문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어쩌면, 성씨의 기초가 여기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피라미드식의 권력단층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원시적 국가를 형성하게 되고 그러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가 필요에 의해 태두되고 그러한 질서는 법과 도덕이라는 형태의 관념들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어느덧 인류는 자신들 특히, 암컷들의 필요에 의해 가부장제도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하나의 제도로서 정착되어 "당연한 것" 또는 "옳은 것" 으로 관념지어지게 되고 그러한 이미 상부구조화한 가부장제도는 가장 꼭대기에 자리잡은 가부장권력을 정점으로 아래로 거쳐 내려가면서 점점 더 작아지는 가부장권력들의 집합체이자 총본산인 가부장제적 국가를 이루게 된다.
가부장제도하에서 남성은 지배자이고 여성은 피지배자인가? 절대로 아니다. 구태여 서열을 매기자라면
가장 강한 남성 - 가장 강한 남성을 차지한 여성 - 다음으로 강한 남성 - 다음으로 강한 남성을 차지한 여성 - 그 다음으로 강한 남성 - 그 다음으로 강한 남성을 차지한 여성 - ::::::::- 가장 약한 남성(얘 밑에는 여성도 없다) 아마도 대략 이럴 것이다.
회사 부장이 지가 남자라는 이유로 사장부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나? 장관이 감히 대통령 영부인한테 게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여성이 권력의 최고정점에 올라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니 여성이 더 불리하다라고 인정할 수는 있겠다만 절대로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에 대해 지배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겠다.
이번에 군가산점 위헌소송을 낸 이화여대생들이 사회적 약자임을 주장함에 대다수 사람들이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 이화여대출신이라는 사회적 위상이 실로 대단히 엄청난 권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뭐? 서울대는 이대생들의 사위집단이라구? 그런 이들이 사회적 약자라니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물론 그들이 권력집단에 소속될 가능성이 많다라고하여 모두를 권력자들이라고 칭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사회적 약자로 위치지어질 일은 대단히 희박하다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고로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지배권력이고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등식은 역시나 개풀 뜯는 소리에 불과하다라고 하겠다. 자본주의체제하의 임금노예, 노동노예들이 그들이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지배계급으로 둔갑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지하에서 편히 잠자고 계실지 걱정되는 바이다.
가부장제 하에서는 소수의 권력의 정점에 있는 남성과 여성들만이 권력자일 뿐이고, 대다수의 남성과 여성은 (그들도 물론 작은 권력들은 향유하고 있지만) 피지배자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시각이라 하겠다.
물론 짧은 시각으로 "우리 집에서는 아빠가 엄마보다 더 힘쎄요. 다른 집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니까 남자가 더 권력자에요" 요러케 애교스런 주장을 펼치는 어린이도 있을 것이나 사회학적 권력이라는 것 그리고 권력구조분석이란 것은 그렇게 미세한 권력의 차이 정도는 크게 신경쓸일이 아니란 것은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일상의 작고 미세한 사안사안에 있어서 권력의 크고 작음을 따진다라면 이 세상에 권력자 아닌 이들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겠는가? 거지들 세계에서도 위계권력이 있으니 거지왕초는 권력자라 할 것인가? 이등병 보다는 일등병이 권력이 높으니 일등병은 권력자가 되나? 말단사원보다는 대리가 권력이 높으니 대리도 권력자인가?
남성이 지배권력이고 여성이 피지배자라는 개풀 뜯는 소리를 자꾸 하다가는 저승에 가서 마르크스 할아버지에게 회초리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3. 일부일처제하에서의 부계혈통중시
부계혈통을 문제삼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어째서 피는 부계를 통해서만 전승된다라고 믿어지는가? 나는 생물학자 또는 유전공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이론 내지는 믿음이 진정 과학적인가 아닌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다만,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그러한 가부장적 부계권력을 처음에 만들어낸 이들이 바로 여성들이며 그러한 여성들에 의해 혈통의식이 더욱 강렬하게 생성되었을 것이다라는 추론을 해본다.
포유동물의 특성상 암컷들은 당연히도 강한숫컷을 원하게 마련이고 그러한 강한숫컷을 원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강한 새끼를 낳고 싶다라는 욕망일 것이다. 그러한 욕망이 바로 부계의 혈통이 누구냐를 따지는 가장 근원적인 인식의 뿌리가 아니겠는가 이 말이다.
부계. 즉, 남성의 입장에서도 역시 강한 암컷 또는 예쁜(^^)암컷을 원하기야 하겠지만 그거야 어디 지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지 혈통이 불량하다라면 아무 암컷도 지를 쳐다봐주지 않는데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한 숫컷을 원하는 여성의 속성은 그것이 피동적인 또는 후천적으로 학습된 객체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란 점이며, 그러한 주체적이고 본능적인 지향이 바로 일부다처사회의 원리라는 점을 이해한다라면 혈통의식은 또한 어찌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추론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능해 진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계혈통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일부다처사회가 지속되어 오던 불과 몇백년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의심없이 민간에 전승되어오던 "믿음" 이다. 이것이 부계혈통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타난 이유는 어디로부터 연유할까?
그것은 바로 일부일처제 사회의 도래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봐야 한다. 더 이상 여성은 강한숫컷을 공유할 수가 없게 되고 물론 뛰어난 여성들은 강한숫컷들을 "선점" 하여 "독점" 하는 영광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지 수준에 맞는 숫컷들을 할 수 없이 택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고 그러한 일대일의 관계에서는 내 새끼가 누구의 혈통인가 하는 점은 더 이상 큰 사회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하나의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라고 보여진다.
부계혈통을 문제삼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어째서 피는 부계를 통해서만 전승된다라고 믿어지는가? 나는 생물학자 또는 유전공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이론 내지는 믿음이 진정 과학적인가 아닌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다만,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그러한 가부장적 부계권력을 처음에 만들어낸 이들이 바로 여성들이며 그러한 여성들에 의해 혈통의식이 더욱 강렬하게 생성되었을 것이다라는 추론을 해본다.
포유동물의 특성상 암컷들은 당연히도 강한숫컷을 원하게 마련이고 그러한 강한숫컷을 원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강한 새끼를 낳고 싶다라는 욕망일 것이다. 그러한 욕망이 바로 부계의 혈통이 누구냐를 따지는 가장 근원적인 인식의 뿌리가 아니겠는가 이 말이다.
부계. 즉, 남성의 입장에서도 역시 강한 암컷 또는 예쁜(^^)암컷을 원하기야 하겠지만 그거야 어디 지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지 혈통이 불량하다라면 아무 암컷도 지를 쳐다봐주지 않는데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한 숫컷을 원하는 여성의 속성은 그것이 피동적인 또는 후천적으로 학습된 객체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란 점이며, 그러한 주체적이고 본능적인 지향이 바로 일부다처사회의 원리라는 점을 이해한다라면 혈통의식은 또한 어찌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추론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능해 진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계혈통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일부다처사회가 지속되어 오던 불과 몇백년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의심없이 민간에 전승되어오던 "믿음" 이다. 이것이 부계혈통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타난 이유는 어디로부터 연유할까?
그것은 바로 일부일처제 사회의 도래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봐야 한다. 더 이상 여성은 강한숫컷을 공유할 수가 없게 되고 물론 뛰어난 여성들은 강한숫컷들을 "선점" 하여 "독점" 하는 영광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지 수준에 맞는 숫컷들을 할 수 없이 택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고 그러한 일대일의 관계에서는 내 새끼가 누구의 혈통인가 하는 점은 더 이상 큰 사회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하나의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라고 보여진다.
일부일처제 사회의 도래와 거의 동시에 현재적 의미의 여성해방운동이 태동되고 일어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더 이상 무의미한 부계혈통에 대한 집착과 가부장권력에 대한 불편함이 현실적으로 여성들을 괴롭힌 결과라 하겠다.
더구나 대가족제도하에서 소위 곳간열쇠를 쥐는 안방마님의 대단한 권력행사라는 달콤한 지위마저도 핵가족화라는 파편화된 가정에서는 더 이상 누릴래야 누릴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가정에서 권력을 찾지 못하는 여성들이 당연히도 사회로 뛰쳐 나오려 몸부림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거니와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그간 가부장권력을 창출해내어 그 안에서 안주하던 여성들에게 더 이상의 가부장권력은 그 자체가 여성의 발을 옭아매는 족쇄로서 기능하게 된다 할 것이니 이것 역시도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즉, 가부장권력이란 일부다처제를 기반으로하는 대가족제도하에서는 여성에게 상당히 매력적이고 편리한 권력제도였지만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하는 핵가족제도하에서는 오히려 가정권력을 갖지도 못하는 여성들을 가정에 귀속시켜 버려 졸지에 무산자계급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역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징하게 남아 있는 고부갈등이란 바로 위의 대가족제도하에서 곳간열쇠를 간수하는 엄청난 권력자였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구습에 더 이상 그 시어머니의 권력을 물려받을게 없다라고 판단하는 영악한 현대여성의 불복종 운동의 절묘한 화음이라고 이해해도 되는 일이다. 물론, 과거의 대가족제하의 여성은 시어머니의 그 곳간열쇠를 세습받기 위해 권력자인 시어머니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4. 현대 여성운동의 근원적 뿌리는 일부일처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유를 욕망하며 그러한 소유의 크기는 바로 권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과거의 가부장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대가족제도하에서의 여성은 그야말로 자신의 일신의 노력이 하나도 없더라도 단지 권력으로부터 선택받음으로서 대단한 권력을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왔던게 사실이다. 그러한 선택받을 기회는 일부다처제를 기반으로 권력 있는 놈이라면 그 선점한 임자가 있건 없건 간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었으며 또한 그러한 선택받음으로 인해 그 권력구조에 투신하게 된다라면 제하기 나름으로 그 권력을 남편의 대에서 뿐만 아니라 자식삼대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의거해 죽을때까지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대가족제도하에서 소위 곳간열쇠를 쥐는 안방마님의 대단한 권력행사라는 달콤한 지위마저도 핵가족화라는 파편화된 가정에서는 더 이상 누릴래야 누릴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가정에서 권력을 찾지 못하는 여성들이 당연히도 사회로 뛰쳐 나오려 몸부림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거니와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그간 가부장권력을 창출해내어 그 안에서 안주하던 여성들에게 더 이상의 가부장권력은 그 자체가 여성의 발을 옭아매는 족쇄로서 기능하게 된다 할 것이니 이것 역시도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즉, 가부장권력이란 일부다처제를 기반으로하는 대가족제도하에서는 여성에게 상당히 매력적이고 편리한 권력제도였지만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하는 핵가족제도하에서는 오히려 가정권력을 갖지도 못하는 여성들을 가정에 귀속시켜 버려 졸지에 무산자계급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역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징하게 남아 있는 고부갈등이란 바로 위의 대가족제도하에서 곳간열쇠를 간수하는 엄청난 권력자였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구습에 더 이상 그 시어머니의 권력을 물려받을게 없다라고 판단하는 영악한 현대여성의 불복종 운동의 절묘한 화음이라고 이해해도 되는 일이다. 물론, 과거의 대가족제하의 여성은 시어머니의 그 곳간열쇠를 세습받기 위해 권력자인 시어머니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4. 현대 여성운동의 근원적 뿌리는 일부일처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유를 욕망하며 그러한 소유의 크기는 바로 권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과거의 가부장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대가족제도하에서의 여성은 그야말로 자신의 일신의 노력이 하나도 없더라도 단지 권력으로부터 선택받음으로서 대단한 권력을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왔던게 사실이다. 그러한 선택받을 기회는 일부다처제를 기반으로 권력 있는 놈이라면 그 선점한 임자가 있건 없건 간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었으며 또한 그러한 선택받음으로 인해 그 권력구조에 투신하게 된다라면 제하기 나름으로 그 권력을 남편의 대에서 뿐만 아니라 자식삼대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의거해 죽을때까지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 구중궁궐의 암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럴듯한 가문의 안방에서까지 이루어 지던 그 치열한 모계권력들의 권력투쟁은 대다수 지배계급의 노예이자 군대로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남성들에게는 감히 꿈꿔 볼수도 없던 "신데렐라" 적 환상이었고 흔한 예로 천민에서 귀족으로 올라선 남성이 많았던가 여성이 많았던가를 수치적으로 비교해 본다라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남성이 천민의 지위에서 귀족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목숨을 내어 던질 정도로 치열한 경쟁과 함께 엄청난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했던 속칭 하늘의 별따기 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이 천민의 지위에서 일약 선택되어 귀족이 되는 예는 실제로 허다하게 있었던 일이란 것을 안다라면 참으로 일부다처사회의 여성들은 행복한 존재들이라 하겠다. 신데렐라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동화이야기 이지만 피터팬은 실현불가능한 동화란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불가능해진게 바로 일부일처제 사회이다. 앞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일부일처제 사회는 바로 남성들간의 평등시대의 도래이다. 일부일처제가 여성에게 평등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진짜루 개풀이나 뜯으시기바란다.
인류는 점차로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진화시켜 오면서 보다 평등한 방향으로 그것을 이루어 왔던 것이며 그러한 평등사회란 개념은 철저하게 남성위주였다라는 것은 구태여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바로 그러한 일환으로 일부일처제의 사회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니 남성들이야 신나는 일이겠지만 - 바보들은 서글퍼 할지도 모른다. 침흘리며 여럿 거느리던 그때가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넘이라면 네넘은 아마 그때 태어났더라면 여자라면 구경도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란걸 명심해라 - 졸지에 가정권력기반이 와르르 무너져내려 더 이상 권력을 향유할 길이 막힌 여성들에게는 청천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은 권력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 가 강요되는 것이다.
일부 여성학자들이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라면 시민사회의 도래와 자본주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고 역시 시민사회의 성립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일부일처제사회로 전환되었다라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이다.
남성이 천민의 지위에서 귀족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목숨을 내어 던질 정도로 치열한 경쟁과 함께 엄청난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했던 속칭 하늘의 별따기 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이 천민의 지위에서 일약 선택되어 귀족이 되는 예는 실제로 허다하게 있었던 일이란 것을 안다라면 참으로 일부다처사회의 여성들은 행복한 존재들이라 하겠다. 신데렐라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동화이야기 이지만 피터팬은 실현불가능한 동화란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불가능해진게 바로 일부일처제 사회이다. 앞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일부일처제 사회는 바로 남성들간의 평등시대의 도래이다. 일부일처제가 여성에게 평등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진짜루 개풀이나 뜯으시기바란다.
인류는 점차로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진화시켜 오면서 보다 평등한 방향으로 그것을 이루어 왔던 것이며 그러한 평등사회란 개념은 철저하게 남성위주였다라는 것은 구태여 다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바로 그러한 일환으로 일부일처제의 사회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니 남성들이야 신나는 일이겠지만 - 바보들은 서글퍼 할지도 모른다. 침흘리며 여럿 거느리던 그때가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넘이라면 네넘은 아마 그때 태어났더라면 여자라면 구경도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란걸 명심해라 - 졸지에 가정권력기반이 와르르 무너져내려 더 이상 권력을 향유할 길이 막힌 여성들에게는 청천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은 권력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 가 강요되는 것이다.
일부 여성학자들이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라면 시민사회의 도래와 자본주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고 역시 시민사회의 성립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일부일처제사회로 전환되었다라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이다.
혹자는 서양의 경우 기독교사상의 영향으로 일부일처제가 조기에 정착되었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냐라고 공박할지 모르겠으나 바로 그러한 기독교가 지배하던 서양의 중세가 얼마나 미개한 것이었나를 살펴보고 그렇지 않았던 동양이 당시 얼마나 강대한 국가를 형성하고 발달한 문명을 이뤘던가를 비교해 보면 알 일이다. 중세의 서양은 이슬람에 비교해서도 미개한 수준이었다 이 말이다.
아무튼간에 여성의 주체적 자각이 아무래도 일부일처제가 조기에 이루어진 서양에서 먼저 비롯되었다라는 사실은 또 다시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하나의 근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5. 결론
일부일처제 사회에서의 가부장제도가 여성에게 대단히 불편한 제도라는 점에는 위의 글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십분 인정하고 긍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가부장제도 폐지하자 하는 주장 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그러렴" 하고 전혀 개의치 않을 일이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무슨 가부장제는 모든 여성에 대한 모든 남성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 따위의 주장으로 자꾸만 덤터기 씌우고 성대결을 자행하는 식이라면 정말 참지 못할 일이라 하겠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만 불편한게 아니라 남성에게도 대단히 불편한 제도이다. 졸지에 평생을 노동노예의 삶을 강요받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만 부담하게 만들어 돈버는 기계로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것은 일부일처사회의 가부장권력이란 것이 과거 대가족제도 하에서의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달콤했던 그런 유혹이 아니라 강요된 성역할분담에 똑같이 신음하고 썩어문드러지게 만드는 대단히 불편한 제도란 것은 남성에게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지 말라고? 누가 막고 있는가? 이미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남성들도 여성이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소일하는 것 당연하게 봐주던 시대는 이제 흘러흘러 지나가고 있다.
아무튼간에 여성의 주체적 자각이 아무래도 일부일처제가 조기에 이루어진 서양에서 먼저 비롯되었다라는 사실은 또 다시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하나의 근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5. 결론
일부일처제 사회에서의 가부장제도가 여성에게 대단히 불편한 제도라는 점에는 위의 글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십분 인정하고 긍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가부장제도 폐지하자 하는 주장 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그러렴" 하고 전혀 개의치 않을 일이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무슨 가부장제는 모든 여성에 대한 모든 남성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 따위의 주장으로 자꾸만 덤터기 씌우고 성대결을 자행하는 식이라면 정말 참지 못할 일이라 하겠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만 불편한게 아니라 남성에게도 대단히 불편한 제도이다. 졸지에 평생을 노동노예의 삶을 강요받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만 부담하게 만들어 돈버는 기계로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것은 일부일처사회의 가부장권력이란 것이 과거 대가족제도 하에서의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달콤했던 그런 유혹이 아니라 강요된 성역할분담에 똑같이 신음하고 썩어문드러지게 만드는 대단히 불편한 제도란 것은 남성에게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지 말라고? 누가 막고 있는가? 이미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남성들도 여성이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소일하는 것 당연하게 봐주던 시대는 이제 흘러흘러 지나가고 있다.
주변에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친구들 손에 주부습진 걸려 고생하고 있기에 "얌마, 너 그럴라구 장가간냐?" 라고 놀리면 어김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짜샤. 내가 마누라 가사 안 거들어주면 직장 그만두고 살림이나 하겠다라고 주저앉아 버리면 어떡하냐? 나 혼자 벌어서 어떻게 먹고살어? 이건 임마 생존에 관련된 문제야."
그렇다. 남성들도 이제는 영악해져서 여성이 고생하는게 안쓰러워 가사를 돕는게 아니라 저런 현실적인 계산이 있기에 웃는 낯을 가장하고 기꺼이 고무장갑을 끼는 것이리라. 내게는 신선한 하나의 충격이었으며 바로 이러한 현실적 인식이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을 도와야 하는 현실적 기반이 될 것이다.
남성들도 당연히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진출하기를 바란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것이 아노미적 괴리상태에 있어 조금은 혼동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여성도 미모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돈버는 능력으로 평가되는 날은 곧 도래할 것이고 바로 그러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 또한 남녀평등으로 한발짝 다가가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라면 사실 이것을 평등이라고 해야만 할까? 나는 별로 이런 현상에 대해 평등이란 고상한 관념을 가져다 붙이기는 조금 역겹다.
다만, 현실적인 필요일 뿐이다.
가전산업의 발달로 점차로 가사노동의 비중은 줄어들것이 뻔한 일이다. 즉, 이제 더 이상 가사노동으로 "봉사" 하는 여성은 남성의 입장에서도 불필요해진다라 이 말이다. 그까짓 가사노동 남성 혼자서라도 이제 얼마든지 하면서 살수 있다. 여성도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필히 돈버는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이 말이다.
한국에 오래 주재하는 외국대사관의 여성들이나 상사주재원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여성들이 참으로 부럽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노동에 대한 부담없이 남편의 보호 아래 저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하며 한국남성들의 대단한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한다란 말이다. 외국남성들이 월급봉투를 통채로 아내에게 가져다 바치는 예는 없다. 심지어 가까운 우리와 비슷한 일본에서 조차도 꿈도 못 꾸는 일이다.
남녀평등을 위해서라면 무엇보다도 남성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남자니까" 라는 허황된 인식을 깨고 얼른 뛰쳐나와 더 이상 노예로서의 삶을 주체적으로 거부하고 보다 자기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자각할 것이 요망된다 이 말이다. 더 이상 여성에게 밥벌이를 시키는 것이 못난 일이라는 허구적 미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고 그러한 공동의 의무부담이 바로 진정한 남녀평등의 길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라면 페미니즘은 대단히 남성들에게 유리한 사상이다. 적극적으로 알려 남성들을 미망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왜냐구? 페미니즘 역시 남성을 위한 사상이니까.
# by | 2008/07/29 22:03 | 마실가서 퍼온 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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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은 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