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얻기 위해선 잃어야 할 것도 있는 법

우종영의   -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

은행나무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과 함께한 나무가 또 있을까.
나는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수억 년 전 인류의 조상들이 돌 도끼를 던져 은행을 따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몇 천 년씩 사는건 예사라고 하니 아마 우리 주위에 있는 은행나무 중에는 실제로 원시인이 던진 돌 도끼에 상처를 입은 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은행나무에게 길어 봐야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마치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양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하찮게 보일는지.
그래도 은행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인자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런 한결같음 때문인지 은행나무처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나무가 또 없다.
여름이면 푸른 그늘로, 낙엽지는 가을이면 연인들의 쉼터로, 해를 지나서는 책갈피 사이에 끼워진 추억으로
늘 우리와 함께 있는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다.
나무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은행나무는 참 행복할 것 같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수천 년간 생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니 말이다.
동양에서만 자란다는 특성 탓에 요새 들어서는 은행나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가장 인상 깊게 본 것 중 하나가 바로 은행나무라고 할 정도니 가히 나무의 왕이라고 할 만하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뵈는 은행나무.
그런데 사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서 오직 일 속, 일 종만 있는 외로운 나무다
더구나 독립수라는 특성 때문에 숲을 이루지 못한다.
저희들끼리도 한데 어울려 자라지 못한다는 거다.
또한 워낙 거수로 자라다 보니 주변에는 작은 풀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거대한 몸집으로 땅속의 영양분을 독식하고 넓게 뻗은 가지로 해를 전부 가리니,
그 근처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다른 나무들에겐 곧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은행나무는 경우에 따라 평생 자식 한번 못 본 체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데,
암꽃이 저 혼자 수정이 될 수 없기에 근처에 있는 수나무가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만 자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 주변의 오래된 은행나무들은 대부분 암나무이다.
만일 근처에 수나무가 없다면 이 은행나무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수정 한번 못해 본 채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는 거다.
뿐만인가. 은행나무는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혈액순환제로 알고 있는 '징코민'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은행나무가 만들어 낸 일종의 독이다
스스로 살기 위해, 자구책으로 독을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주위의 모든 생명체를 물리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얼마나 독하면 집안의 개미를 없앤다고 일부러 은행나무 잎을 방바닥에 깔아 놓을까.
차라리 제 몸 일부를 포기하고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은행나무는 오랜 시간 살아온 습성을 절대 버리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으면서 오래오래 사는 은행나무,
그러나 그의 행복 뒤에는 이렇게 '외로움'이라는 큰 대가가 따른다.
가끔씩 나는 내가 나무로 태어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중에서도 만일 은행나무로 태어난다면......
일단은 좋을 것 같다.
은행나무처럼 사람들이 알아주고, 따뜻한 관심속에 오랜 시간 빛을 발하는 나무도 없을테니까.
아주 긴 시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때론 치성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연인의 편지에 함께 동봉되기도 하고,
지친 발걸음을 쉬게 하는 그늘이 된다는 것,
생각만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또한 백 년을 일년같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건 장수의 표상인 은행나무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일 게다.
그러나 그 안 깊이 숨겨진 비밀을 생각하면 은행나무가 된다는 것에 선뜻 자신이 서질 않는다.
천 년이고 이천 년이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사는 삶은 결국 철저한 외로움을 전제로 얻은 게 아니던가.
수천 년 버티는 동안 은행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여유로운 모습 속에,
화사하게 달린 노란 이파리 속에 그런 인내와 고통이 숨어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줄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데,
은행나무를 보면 그 말이 실감 난다.
긴 시간 버틴 끝에 굵은 몸집으로 우뚝 선 은행나무.
이제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보면 먼저 이런말 부터 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외로워도 잘 버텨라, 너에게는 그래도 너를 사랑하고 아껴 주는 사람들이 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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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표 | 2007/07/21 00:54 |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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